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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싱글라이더] 가족의 가치와 소중함을 매일 아는 것이 행복이다

by sky_barabara 2024.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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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싱글라이더>는 가장 소중하다고 믿었던 성공를 잃은 가장이 가족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삶의 후회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전체적으로 역동적인 장면이 없는데도, 마음에 무거운 울림을 주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소설보다는 시에 가까운 정적인 리듬으로 극 전체를 이끌어간다. 의외의 반전이 있는 영화이지만, 묵직한 영화의 메시지와 울림 때문에 반전은 충격적이기보다 슬프게 다가온다. 이병헌, 공효진, 안소희의 안정적이고 섬세한 연기가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이주영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이다. (*스포가 있습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보이지 않던, 삶의 소중한 가치들

 

재훈은 잘나가는 증권회사 지점장으로 우수한 영업실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이다. 그러나 영업한 증권이 부실채권인 것이 드러나며 위기에 빠진다. 자신이 쌓아올린 사회적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지며, 재훈도 무너지고 만다. 재훈의 권유로 진우(아들)과 함께 2년간 호주로 이주한 아내 수진을 찾아, 재훈은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수진의 집 앞에서 재훈은 크리스와 함께 있는 아내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몸을 숨긴다. 며칠 동안 수진의 곁을 맴돌며, 더 이상 예전의 의존적인 수진이 아닌 것을 느끼고 허탈함과 배신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내 가족들에게 무심하며, 모든 것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고 자신만만했던 자신의 삶을 후회한다. 아내와 아들의 주위를 맴돌며 지난 날들을 반추하던 그는, 결국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싱글라이더, 혼자 여행하며 반추하는 삶

 

'싱글라이더'는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영화는 재훈이 혼자 여행하는 모습을 카메라가 따라가는 형식으로 그려진다. 영화의 처음에 재훈은 핸드폰으로 아내와 아들이 보내온 영상을 보고 있다. 이전에는 별로 관심없었던 가족의 일상. 영화는 재훈이 추락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추락은 재훈이 가족에게로 가는 원인이 된다. 중간중간 과거의 재훈과 수진이 등장하는데, 이전의 재훈은 자신만만하고 망설임이 없으며,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다. 반면, 수진은 재훈에게 의존적이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삶을 귀찮아하며, 주체적이지 못했다. 그랬기에 재훈은 호주에서 만난 수진의 자유분방하고 주체적인 삶에 당황하며, 이웃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며 배신감까지 느끼게 된다. 이웃남자 크리스와의 평화로운 바닷가 산책도, 아이의 숙제를 봐주는 일상도 아빠인 자신이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도 이제서야 깨닫는다. 아내와 아이가 즐겁게 살기를 바랬으면서도 그들의 일상에 관심이 없었던 재훈. 오로지 성과와 성공만을 달려온 지난날을 후회하지만, 다시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 아이가 함께 가기를 바랬던 그 바다를 향해 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것을 깨닫고 내려놓은 재훈의 표정이 유난히 평화롭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가족의 가치와 의미

 

재훈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였을까. 잘나가던 그에게 가족은 그저 함께 사는 사람, 그 정도이지 않았을까. 수진은 그가 없을 때는 바깥 소리도 무섭다며 현관문 안에서 열고 잠글 수 있는 장금장치를 달고, 스스로의 노력은 귀찮은 사람이 되었다. 이웃집 남자 크리스도 발견한 외로움을 남편인 재훈은 알지 못했다. 스스로의 성공에 눈이 멀고 자신만만함에 가리워졌기에.이 영화에서 재훈은 말이 없는 편인데 지나(안소희)와의 대화를 통해 생각이 드러난다. 

 

너무 좋은 거래에는 항상 거짓이 있는 법. 내가 하는 일에 의심해 본 적이 없었어요.
부실채권을 고객들한테 팔면서 그 거래 때문에 다 잃었어요.

 

지나가 사기를 당하자, 재훈은 자신의 비싼 경험을 들려준다. 일에서 자만했던 자신을 후회하며, 가족에게서도 자만했던 자신을 발견하고, 아내 앞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이 초라하다. 일이 자신의 인생의 전부였기 때문에, 아내도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의 추락은 재훈의 추락인 것과 동시에 자기가 책임져야 할 가족의 추락이어서 스스로를 견뎌내는 것도 힘든 상황이었다. 

가족에게 책임감은 너무 소중한 가치이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주체적으로 서는 힘, 바로 사랑의 힘이다.  

 

 

 

수진의 오디션장을 따라가게 된 재훈은, 수진의 가치관을 우연히 듣게 된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절실하지도 않았고 소중한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지금의 저는 연주를 해야하는 이유가 있어요. 저는저는 한국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고부터 누가 내 삶을 이끄는지 몰랐습니다. 나는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을 거부했어요. 하지만 이제 알았습니다. 

 

더 이상 재훈에게만 의존하던 수진이 아니다. 자유롭지만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호주에서 수진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외로움을 알아주는 이웃을 통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힘을 키워나간 것이다. 그래서 귀찮기만 했던 자신의 진짜 꿈인 바이올린을 통해 이민을 준비하고, 재훈과 함께 살 계획을 세운다. 재훈이 꾸린 가족은 겉으로는 이상적이었지만비대칭적인 관계였다면, 수진이 꾸리려던 가족은 주체적인 존재들의 결합이며, 의지적 사랑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재훈은 자신은 몰랐던 가족의 모습에 착잡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반전을 위한 영화적 장치들 

 

영화에는 재훈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복선들이 많이 등장한다. 크리스를 미행하다가 그 일행들과 마주치게 되지만 모두 재훈을 비켜가고, 높은 다리 위에서 '자살하면 안돼요' 하며 등장하는 인부는 금세 재훈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아마도 그 다리에서 떨어져 죽은 인부였을 것이다. 재훈을 의심하는 동네 할머니와 6년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크리스의 부인 등, 재훈은 죽음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만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 내내 아내와 이야기하는 장면은 한 장면도 없다. 강아지 치치도 차에 치일 뻔 한 상황에서 정말 죽은 것이었다. 

특히 지나(안소희)의 사건은 실제 호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인데, 나중에 자신의 죽은 모습을 발견하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이 영화는 두 번, 세 번 볼 때마다 복선을 찾아내는 재미와 반전을 준비하며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힌트들이 정교하고 짜임새 있다. 

 

수진은 재훈과 연락이 되지 않아 아파트 경비원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처음엔 번호를 제대로 눌렀는데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과거 수진이 집 안에서 잠그고 열 수 있는 잠금장치를 설치했다는 것을 떠올리며, '집 안에 사람이 있나 봐요'하는 불길한 말을 한다. 

마지막 반전을 위해 준비한 연출자의 정성스러운 복선들이 마지막에 휘몰아치며, 가족을 잃은 혹은 스스로를 잃은 자들의 슬픔이 가슴을 아린다. 

 

 

고은의 시, 낮아질 때야 보이는 소중한 가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영화의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고은의 시 <그 꽃>이다. 이 영화의 함축적 내용을 집약한 이 시는 목표지향적인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는지 경고한다. 그 목표가 사람의 가치나 의미가 아닌 물질, 명예, 권력일 때는 더 위험하다. 우리는 높아지는 것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줄 알지만, 사람의 마음에 남는 가치와 의미가 없다면 다른 모든 것은 무의미할 뿐이다. 우리는 무모해서,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때가 있다. 재훈은 그제서야 수진과 진우가 매일매일 재미있게 보내기를 바란다고 말해준다.(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쓸모가 아니라)  재훈이 지점장으로 있을 때보다, 아들이 함께 가기를 바랬던 바다에 도착했을 때 더 행복하고 편안한 얼굴인 것을 보면 재훈은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가장 소중한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재훈이 혼자 거리를 걸을 때 삽입된 피아노나 바이올린의 선율은 재훈의 반추와 사색을 돕는 듯, 아름답게 느껴진다. 

 

재훈의 죽음을 듣고,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아빠를 만났다는 진우의 이야기를 묻는 수진의 얼굴과 순수한 진우의 모습이 더없이 슬퍼보여 긴 여운을 남긴 영화, <싱글라이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