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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미비포유] 삶의 기회와 선택

by sky_barabara 2024.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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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비포유>는 긍정적이고 밝은 루이자가 전신마비 장애인으로 살고 있는 윌을 만나 그와 함께 나누는 버킷리스트를 통해 예전의 웃음과 행복을 되찾지만, 새롭게 시작된 인연 속에서 인생의 가치를 깨달은 만큼 그 허무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마지막을 선택하는 이야기다. 스위스에서는 실제 존엄사가 이루어지며 이를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뉴스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 이야기는 삶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고로 인해 가리워졌던 자신의 인생을 되찾은 남자가 결국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마지막을 생각하며,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고찰하게 한다.

(*스포 있습니다)

 

 

 

6년 동안이나 일했던 카페가 문을 닫으며 백수가 된 루이자(에밀리아 클라크)는 새 직장을 찾아 나선다. 성공한 사업가였던 전신마비 환자 윌(샘 클라플린)의 임시 간병인이 되어 그의 인생에 걸어들어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까칠했던 윌은 그녀의 엉뚱하고 밝은 분위기와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마음을 나눈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희생하는 루를 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루는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려는 윌을 안타까워한다. 버킷리스트를 이뤄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둘은 서로에게 스며든다. 신혼여행같은 여행을 마지막으로 윌은 자신의 선택을 실천하려 하고, 이런 윌을 루는 안타까워하지만 결국 그의 결정을 존중한다. 

 

 

선택하는 삶의 자유함

 

이 영화의 주인공 윌은 잘나가는 사업가였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애인이 있고, 운동과 여가를 즐길줄 아는 그의 삶은 너무 행복했다.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자, 일도, 애인도 떠나고 마굿간을 개조해 만든 자신의 방에서 간병인과 보내는 하루하루가 그의 전부다. 회복되지 못하는 몸을 매일 느끼면서. 뇌를 다치지 않은 그는 자신의 몸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도, 평생 이렇게 살아야한다는 것도 너무 잘 안다. 그게 그에게는 더 큰 병이었을까. 그는 자신의 처지를 견디지 못한다. 행복한 순간이 와도 온전히 행복할 수 없는 건, 예전의 윌이 아니기 때문에.

윌을 도와주는 남자 간호사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밤에 같이 있다 보면 비명을 질러요.
꿈에선 뛰어다니다가 스키도 타고 자유롭게 움직이다가 깨는 거죠.

 

그리고 윌은 루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건 내 삶이 아니에요. 난 내 인생을 사랑했어요. 진심으로요. 난 이 삶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너무나 사랑스러운 루가 곁에 있어도 윌은 그의 삶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전의 삶을 너무 사랑했다. 그의 결정이 루에게 잔인할지라도 그는 그의 사랑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다. 행복한 순간을 맞이할수록 고통스러운 그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의 마지막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가 스스로에게 주는 유일한 자유였을 것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기회가 된 인연

루의 엉뚱함은 이 영화를 생기있고 발랄하게 만든다. 시니컬한 농담을 즐기는 윌의 이야기에 우울해질 위기에 처해도, 생계때문에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야 하고, 현실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 동생의 이야기는 늘 힘이 된다. 무엇보다 루의 가족들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해서 가족의 모습을 통해 그녀의 배려와 사랑스러움의 이유를 알 수 있다. 

 

윌이 루의 생일파티에 참석하며 루의 가족들과 함께 있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유쾌한 장면이다. 자기중심적인 남자친구의 선물에 시큰둥하던 루는, 윌이 선물한 줄무늬 스타킹을 받으며 팔짝팔짝 뛴다. 아, 이렇게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이라니.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살고 싶다. 

 

루의 정성으로 윌은 전여친의 결혼식장에도 간다. 거기서 전여친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를 확인하고, 둘은 서로를 확인한다. 서로에게 진심으로 응원하는 삶을 살게 된 두 사람은 정말 멋진 전사같았다. 두 사람의 애정과 우정을 영원히 응원하고 싶다. 

 

 

줄무늬스타킹, 당당하게 살기

 

루의 멋진 마음과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게 된 윌은 루가 더 당당하게 살기를 바란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응원하기 시작하면서 윌은 루에게 늘 응원하는 말을 보낸다.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는 루의 인생이 아닌, 당당하게 넓은 세계에서 살길 윌은 간절히 바란다. 어쩌면 자신은 할 수 없는 것들을 루가 이루며 살기를 바라는지도. 

 

-당신이 가진 게 뭐게요?
-가능성이란 말 말아요.
-가능성이에요. 인생은 한번이에요. 최대한 열심히 사는 게 삶에 대한 의무예요.

 

 

윌은 인생은 유한하고, 한 번뿐이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아는 사람이었다. 매순간 느껴지는 삶의 좌절이 그를 갉아먹고, 열심히 하려는 것들을 생각할수록 낙심만 되는 그의 삶에서 그는 그의 마지막을 가장 열심히 준비했을 것이다. 그는 그의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사랑과 진심을 보여주면서. 

루도 그의 이런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에 마냥 슬퍼만 하지 않고, 그의 마지막을 피하지 않았다. 둘은 진정한 마음을 나누며 서로에게 당당해 지는 자유를 선택한 것이다. 

 

 

기회가 있는 삶, 소망을 품는 삶

 

<미비포유>를 보고 나면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유한하고 한 번 뿐인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가 가진 힘이다. 

 

대담하게 살아요.
끝까지 밀어붙여요. 안주하지 말아요.
줄무늬 스타킹을 당당하게 입어요. 아직 기회가 있단 건 감사한 일이에요.

 

윌은 자신을 가둔 전신마비의 몸으로도 파리의 노천카페에서 보냈던 휴가를 생생하게 기억하며 그리워하며 못견뎌한다. 수없이 많은 밤을 지새며 자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을 그에게 어떤 비난도 할 수 없는 이유다. 예전의 삶을 살 기회가 없기에 윌은 스스로에게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루를 보면서,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기회들을 주고 싶었고, 그걸 실현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안 순간부터 그는 행복했을 것이다. 기회를 주고, 소망을 품게 하는 사람에게는 받는 사람은 알 수 없는 풍성함이 있기 때문이다. 루를 떠나면서도, 또 다른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을 윌의 마지막을 목도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냥 살아요.

윌은 죽음을 선택하면서도 루에게는 '잘' 살으라고, '그냥' 살으라고 말한다. 자신은 '잘'도, '그냥'도 살지 못했지만, 루는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윌도 얼마나 살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을지, 마지막 윌의 편지를 들으면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윌이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행복한 순간인 파리의 노천카페에서, 노랑검정줄무늬 스타킹을 당당하게 신고 윌을 추억하는 그녀의 인생이 '그를 만나기 전'과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의 결정을 바꾸지 않았지만, 윌은 서로를 만나기 전에는 담을 수 없었던 마음을 담고 떠났을 것이다. 마음에 새겨져 있다는 고백처럼. 

 

저희에게 기회를 주시고
삶의 시련을 이겨낼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적극적인 그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는 중에도, 루의 어머니의 기도는 마음을 울린다. 그 기회와 이겨낼 힘을 끝까지 붙들지 못했던 윌의 마지막이 여운을 남기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