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헌트>는 평범한 남자에게 찾아온 오해가 그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는지를 담담하게 그려낸 덴마크 영화다. 극 중에서 루카스 역을 맡은 매즈 미켈슨은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지만, 낙인이 되어 돌아오는 군중들의 각인은 생각보다 훨씬 세다는 것을 실감하는 인물을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겨울의 건조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돋보이는데, 아이들과 유치원에서 노는 장면이나 마쿠스(루카스의 아들)의 성인식 장면 정도에서만 밝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영화의 극적 고조로 인해 성인식 장면도 겉으로만 밝은 분위기인 것을 관객들도 극중 인물들도 다 알고 있다. 주제가 무거운 편인데, 낮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주제를 더욱 부각시켜 준다. 공동체가 생각하는 정의로움은 정말 옳은 것인지, 요즘 미투운동이나 댓글부대의 인식공격 등 한국사회의 문제점들을 상기시켜주며,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추하게 하는 영화이다.
(*스포 있습니다.)
아이의 입에서 시작된 오해, 그리고 낙인
루카스는 시골 동네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며, 고향 친구들과 돈독한 우정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혼한 아내와 양육권 다툼을 하고 있는데 아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한다. 아들을 데려오는 데 흠이 될만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들에게 인기도 많아서 유치원에서도 인정받고, 아이들과도 허물없이 지낸다.
루카스의 친구 테오에게는 큰아들 토스톤과 막내딸 클라라가 있는데, 클라라가 부모의 무관심으로 내성적이고 혼자노는 것이 안타까웠던 루카스는 클라라와 산책도 하고 유치원도 데려다 주며, 돌봐 준다. 클라라는 그의 관심이 좋아서 장난치던 중 루카스에게 뽀뽀를 하게 되고, 루카스는 아이의 표현에 당황하지 않고 타이르며, 주의를 준다. 이것에 상처받은 클라라는 원장선생님께 루카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고, 원장 선생님은 루카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범죄로 단정한다. 아동상담센터직원과 마을사람들, 루카스의 전부인에게까지 소문이 확장되면서 이 작은 마을에서 살 수 없을 지경까지 가게 된 루카스는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에도 이어지는 자신을 향한 낙인에 낙심한다.
공동체가 가지는 힘
이 영화는 한 사람의 말과 생각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는지 보여준다. 클라라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어린아이가 본 것들을 두서없이 짜깁기한 것에 불과했다. 유치원 원장 선생님은 아이의 입장에서 가르쳐야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지만,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듣지 않고 행동한 그녀의 경솔한 행동에 화가 났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옮겨간 확실하지 않은 사실은 어른들끼리 공유하는 순간, 사실이 되고 확신이 된다.
한 두 사람이 모여 이루는 말과 행동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영향력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에도 군중들은 동요하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어른이 한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순수한 아이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어른들의 현실과 만나면 범죄가 되어 버리고, 어른의 판단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게 만드니까.
특히, 다른 아이들도 학대받은 정황이 있는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모든 아이들이 지하실과 가구 배치를 똑같이 이야기하는데, 실제로는 그 지하실이 없다는 것이 밝혀지며 영화는 반전을 맞는다.(실제 있었던 사건) 어른들이 유도한 질문들은 상상력이 많은 아이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이게 하고, 학대받지 않은 아이들에게도 학대피해자 프레임을 씌운다. 사건이 없음에도 피해자의 상처가 아이들에게 각인된 순간이다. 한 어른의 판단이,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장면이었다.
그의 결백과 상흔
루카스는 아들과 같이 살고 싶어하는 평범한 시골 남자다. 모든 화살이 그에게 꽂힐 때, 그의 결백을 밝힐 사람은 자기 스스로 뿐이다. 아니라고 말하며 저항할수록 돌아오는 건 폭력과 싸움뿐이고, 낙인은 더욱 깊어진다. 무죄가 밝혀지고 난 후, 크리스마스에 교회로 간 루카스는 친구 테오를 빤히 쳐다본다.
내 눈 봐. 뭐가 보여? 뭐가 보이냐고…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다고. 날 내버려 둬, 날 좀 내버려 두라고
루카스의 눈빛을 본 테오는 혼란스러워하는데, 오랜 친구의 눈빛을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군중에 휩쓸리고, 소문에 휩싸여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을 때,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의 피흘림이 있다. 그 피흘림이 정당하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너무 멀리 가버린 후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닌데,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남는 상처들이 그들에게 남기 때문이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 이유
클라라가 루카스의 상황이 좋지 않음을 깨닫고, 자신이 다 지어낸 말이었다고 어른들에게 얘기하지만, 이미 한번 생겨난 불씨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클라라의 엄마는 클라라에게 충격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클라라의 생각을 단정짓는다. 클라라는 루카스와 만날 때 울며 혼란스러워하고, 정말 피해자같은 상황들이 연출된다.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도, 피해를 입은 것과 같은 정신적 충격이 생긴 것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면에서 흔히 읽을 수 있는 뉴스들은 내가 읽을 때는 뉴스지만, 그것이 내 삶속에 일어나면 엄청난 것이 된다. 사건과 사고를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힘든 것인지 모르지 않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휘두른 상흔을 받아들이며, 피해자의 삶과 가해자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개인의 인생에게 가혹한 일일까.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이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모든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단단한 가치관과 정의가 필요하다. 비참한 상황에 내모릴게 되더라도 내 삶을 버리지 않고, 똑바로 직시할 용기와 담대함이 결국 내 삶을 구원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달라지지 않을지라도.
피해자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상흔을 안고 꼭 살아가야 할 필요는 없다. 클라라의 친구들이 범죄를 당하지 않았음에도 피해자의 후유증이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는 어쩌면 선택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떤 상황에서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들을. 학부모들은 피해자의 삶을 기정사실화하며, 아이들의 내면에 불신과 좌절을 가치관을 심겨주고 말았다.
문제는 없고, 피해자만 있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마녀사냥을 깊게 다루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고 믿고, 문제를 해결하고, 문제를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루카스가 마을을 떠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끝날 것이라고. 그러나 루카스는 끝까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백을 주장했으며, 그곳에서 아들 마쿠스의 성인식까지 치룬다. 루카스의 무죄가 확정되었을 때, 모든 오해가 풀려질 것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클라라의 증언 따위 묻힌지 오래고, 본래 그렇게 대했던 것처럼 루카스를 불편해하기 시작한다. 대중이 자신의 오해를 자각하기도 힘들 뿐아니라, 그것을 돌이키고 사죄하는 일을 우리는 경험한 적이 없다.
피해자의 프레임은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법적으로 증명되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생각 속에 파고든 불신과 의심은 뿌리가 깊다. 결국, 개인이 가진 부정적인 경험은 타인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에 더 허용적이며, 이것이 실체가 없는 가상세계일 경우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우리를 바라보는 루카스의 알 수 없는 눈빛
인터넷과 휴대폰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대면하지 않고 사람들을 칭찬하고 욕한다. 얼굴없이 내미는 명함은 가짜가 많다. 책임감은 줄어들고, 감정은 폭발한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댓글 때문에 자살하는 유명인들 소식을 자주 접한다. 누군가를 향한 비난이 나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의 태도는 달라질 것이다. '저 일은 내 일이 아니야, 그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아' 하며, 단죄하는 마음만 커져가는 사회에서 문제 없는 희생은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증거나 증명도 상관없이, 루카스의 눈빛을 통해 테드가 진실을 알았던 것처럼, 우리는 객관적인 증거들에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다. 오직 진심과 신뢰만이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진정성이 있을 때에 우리의 마음은 움직이고, 우리의 판단이 옳지 않은지 돌아보기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진심이 통하는, 진심을 알아보는 의식과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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