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은밀한 유혹>은 억만장자로부터 아내와의 하룻밤을 제안받은 부부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생기는 갈등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에드리안 라인 감독의 1993년 작품으로, 어리고 앳된 데미 무어의 리즈 시절을 감상할 수 있는 영화다.
잭 엔젤하드의 동명 소설이 이 영화의 원작이다.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있는지 화두를 던지며 억만장자는 부부에게 접근한다. 그후, 부부가 겪는 위기와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보여주며 사랑의 기억이 가진 힘과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영화이다.
(*스포 있습니다.)
사랑을 걸고 하는 내기
고등학생의 나이에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데이빗과 다이애나는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가고 있다. 데이빗은 건축사무소를 다니고, 다이애나는 부동산 관련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는데, 큰 꿈을 안고 집을 짓고 살기 위해 땅을 구매한다. 그런데 데이빗이 실직하고, 부동산 업계 불황이 닥치자 융자금을 감당할 수 없게 된 둘은 부모님에 빌린 오천 달러를 가지고 카지노로 향한다. 그곳에서 처음에는 큰 돈을 따게 되지만, 욕심을 부린 결과 돈을 다 잃고 만다.
그런데 그곳에서 존 게이지(로버트 레드포드)가 다이애나를 우연히 발견하고, 다이애나에게 베팅을 권한다. 다이애나의 베팅으로 큰 돈을 따게 된 존은 이 부부를 식사자리에 초대하고 제안을 걸어온다. 다이애나와 하룻밤에 백만 달러를 주겠다는 유혹적인 제안. 둘은 망설이지만 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고, 갈등 속에서 둘의 사이는 점점 멀이지게 된다. 다이애나가 존의 곁에 있는 시간 동안 큰 깨달음을 얻은 데이빗은 다이애나를 찾아가고, 다이애나의 눈빛을 본 존은 그녀를 놓아준다. 데이빗과 다이애나는 다시 사랑을 확인한다.
유혹에 빠지다
데이빗과 다이애나는 부모가 반대하지만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했다. 두 사람이 가진 추억과 사랑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직과 불황, 돈이라는 너무나 거대한 산이 이 둘을 흔들리게 했다. 아무리 사랑해도 돈없이는 유지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사랑이었을까. 사랑으로 함께 키워가던 새 집에 대한 꿈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둘의 마음도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돈을 향해 나아가는 두 사람의 마음이 커질수록 둘은 점점더 멀어진다. 서로를 바라보기 보다 욕심이 이 둘의 마음을 가려버린 것 같다.
결국 존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두 사람이 더 큰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욕심만을 따라가다 보면, 진짜 반짝이는 것이 무엇인지 놓치게 된다. 다시 뉘우치거나 돌아보는 일이 없이는 다시 찾을 수 없다. 다시 되찾기 위해서는 더 큰 댓가를 치워야 할 지도 모른다.
경험 후에야 알게 되는 깨달음
풋풋한 우디 해럴슨과 데미 무어는 청춘 남녀의 설렘을 보여준다. 둘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부모님이 싫어하셔도 견고할 것 같은 마음이 있다고 믿는다. 아슬아슬 흔들릴 수 있는 상황들이 계속되어도 믿고 의지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잘 살아 보기 위한 목적이 돈이나 집같은 외적인 것들이 될 때, 사람은 길을 잃는다. 그 목적을 이루었을 때는 돈에 취하고, 그 목적을 잃었을 때는 전부를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늘 사람과 마음과 가치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외적인 것을 잃었을 때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돈에 가치를 두었던 데이빗과 다이애나는 조의 제안에 흔들린다. 데이빗은 금방 후회했지만 이미 '돈의 마음'을 품었던 댓가를 치뤄야 했다. '하룻밤은 지나가고 돈은 남는다'는 물질적인 욕심이 서로의 진심을 가리워버린 것이다. 모든 날들 중에 하룻밤일지라도 그것은 마음이기 때문에 둘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상상과 실제는 다르기에, 실제의 충격은 데이빗에게 훨씬 더 잔인한 것이었다. 데이빗이 사랑은 거래해선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다행스럽게 깨우치고, 돌이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돈은 남지 않았지만, 다시 사랑을 찾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영혼에 기억되는 사랑의 경험과 각인
이 영화에서 조는 어린 시절 첫사랑을 그냥 보내버린 기억 때문에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것을 잊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그래서 다이애나를 발견한 순간, 놓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돈을 가진 그에게는 그녀가 얼마나 보석같은지 더 잘 보였기 때문에 백만 달러의 돈이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람보다 돈이 더 보일 수 있지만, 이미 돈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되는 것 같다. 아마 조는 30년 전 돈 때문에 첫사랑을 잃은 것이 아닐까.
조는 자신의 집에서 이곳에 꼭 필요한 사람은 다이애나라고 고백하며 '다 갖춰져 있어도 사람의 마음과 진심 없이는 아무 소용없는' 자신의 재력을 보여준다. 풍요로워 보이지만 정말 풍요로운 것은 영혼과 마음이 채워졌을 때인 것을 조를 통해 보여준다. 뒤늦게 깨달은 데이빗 역시, 댓가로 받은 백만 달러를 하마를 위해 써버리며, 돈과 바꿔선 안 되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돈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표현하는 데이빗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데이빗을 바라보는 다이애나의 눈빛을 읽은 조는 자신이 절대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걸 깨달고 그녀를 보내주기로 결심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서로를 기억하는 거야.
연인이 헤어지지 않는 건 잘못을 잊어서가 아니라 용서하기 때문이었어.(데이빗의 대사)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올바른 방향을 알게 되면, 그것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 데이빗은 거래의 하룻밤을 내려놓고(용서), 그녀를 다시 찾은 것이다.
라즈베리상에 빛나는 영화
돈으로 사랑을 사려는 사람과 돈 때문에 사랑을 거래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물질로 사람에게 장난치는 것처럼 느껴지는 영화의 줄거리 때문인지 이 영화는 골든 라즈베리 상을 받았다. 라즈베리는 나무딸기를 뜻하지만 미국 속어로 입술 사이에서 혀를 진동시켜 내는 야유 소리로 경멸, 냉소를 뜻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이 영화는 최악의 작품상, 각본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개척의 나라답게 미국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의지적으로 승리하는 개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들에 좋은 상을 준다.(아카데미상 같은) 그에 반해, 물질이 사람의 마음을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은밀한 유혹>과 같은 영화는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걸까.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막장영화의 대우를 받았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플래시 댄스> <로리타><언페이스풀>의 감독의 영화라 눈길이 갔던 영화인데, 라즈베리상을 받았다고 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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