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시간 여행을 하는 남자와 결혼하며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린 영화다. 환타지적 요소의 설정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뤄지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헨리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애쓰지만, 불가항력적인 시간 여행으로 우여곡절을 겪고, 이를 통해 가족의 상실과 애틋함 속에서 꼭 지켜야 하는 가치를 보여준다. 에릭 바나와 레이첼 맥아담스의 안정적인 연기와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영화를 가득 채우는 신비롭고 행복한 영화다.
삶과 판타지의 만남
어린 시절 헨리는 자동차 사고로 인해 어머니를 잃은 순간, 시간 여행을 하며 자신의 목숨은 건진다. 아내를 잃은 후 비판에 젖어 사는 아버지를 봐야 하는 헨리는, 시간 여행을 해도 과거 바꿀 수 없다. 미래의 자신을 만난 헨리는 그를 통해 시간 여행의 정보를 듣는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클레어는 헨리를 알아보고 반가워하지만, 헨리는 그런 클레어를 알지 못한다. 클레어는 자신이 6살 때부터 헨리를 만났다고 이야기하며, 새로운 사실들을 알려준다. 그리고 둘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약속한다.
결혼식날, 현재의 헨리는 시간 여행을 하게 되고, 미래에서 온 헨리가 신랑자리에 선다. 결혼 후에도 자주 시간여행을 했기에 클레어는 스트레스를 받지만, 둘은 서로를 사랑하며 극복해 나간다. 어느 날, 시간여행 온 헨리가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충격에 휩싸인다. 뱃속의 아기가 계속 죽는 것은 시간여행자 일지도모른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케드릭 박사의 도움을 받지만 헨리는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결정한다. 한편, 과거에서 시간 여행 온 헨리를 만난 클레어는 임신하고, 헨리는 시간 여행을 하며 미래의 딸을 만나 자신의 죽음을 듣게 된다.
시간 여행자의 사랑
난 평생 그 사람을 기다렸는데 인제 여기 있어.
이미 벌어진 일이란 얘기야. 바꾸고 싶어도 못 바꿔.
나이든 헨리는 어린 클레어를 만나러 간다. 어린 클레어는 헨리를 모르지만, 시간 여행온 헨리는 이미 어른이 된 클레어와 결혼도 약속한 상태다. 이처럼, 이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데 몸은 어른의 모습 그대로인 거다. 우리의 시간은 일직선인데 이 영화에서의 시간은 4차원적이고 입체적이어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만나기도 하는 설정이다.
어린 시절 만났던 헨리를 기억하고 있던 클레어는, 헨리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처럼.
내 인연이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건, 마법같은 일이다. 알아보지 못해서 헤어지는 연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시간 여행이라는 설정이 있어서 '헨리'가 '내 남편'이 확실하지만, 시간 여행이 없는 우리 삶도 비슷하다.
클레어가 헨리를 찾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린 것처럼, 우리의 인연도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린다.
바로 그 사람이라는 정답지는 없지만, 결국 우리는 최고의 인연을 찾아내고야 만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알아두면 쓸모가 많을 거야.
어디로 시간 여행을 아는지, 언제로 가는지 헨리는 알지 못한다. 게다가 벌거벗은 채다. 물질적인 것들은 어떻게든 충족할 수 있지만,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위기들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상실, 사고는 어떻게 감당하고 마음을 다시 세울 수 있을까. 소중한 것이 많아질수록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은 더 두려워진다. 헨리는 과거를 알지만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을 몇번이나 목격해야 했고, 임신한 아이를 잃는 경험을 수없이 해야 했다.
자신이 죽는 시점을 알고 있던 헨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자신이 죽는 날, 클레어가 혼자 외롭지 않도록 헨리는 지인들을 초대한다.
-왜 잔뜩 사람들을 초대 했어?
-당신이 혼자 있는 거 싫어서.
삶의 불특정한 상황들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기 아끼기 때문에 최선의 아름다운 선택들을 해야 한다. 상황과 결과를 바꿀 수 없을지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서로를 아낀다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헨리처럼.
미래를 알고 꾸려가는 최고의 삶
클레어는 헨리를 단번에 알아본다. 인연을 찾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아도 단 한번에 찾는 인연은 보물찾기처럼 짜릿하다. 헨리는 자신들이 함께 살 집을 구할 때에도 미래에서 본 자신의 집을 선택한다.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듯이. 복권 당첨 찬스를 쓰는 장면은 사실 좀 많이 부러웠다. 그 날짜에 그날 번호를 알고 있는 헨리는 좀더 행복했을까.
앞날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좀 덜 불안해 하고, 덜 걱정할 수 있다. 일어날 일들을 대비하고 예측하며, 지금의 상황을 좀더 좋게 만들어 갈 수 있다. 불완전한 인생을 살면서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을 붙잡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한다.
이런 주인공들의 선택을 이해하면서도, 이 영화의 전체적인 설정이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이미 우리의 인연은 결정되어 있고, 우리는 안전한 것을 선택하며, 우리의 삶과 죽음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설정은 너무 운명론적이다.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로맨스 영화였기 망정이지, 스릴러나 액션 영화였다면 주인공이 멘탈을 끝까지 잘 잡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운명 앞에서도 소중한 시간들을 나누는 주인공들의 여정을 통해 감동을 이끌어 내려는 감독의 노력은 가상하다.
마법같은 삶
난 아무것도 안 바꿀 거야.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을.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을 거야.
클레어는 헨리와의 추억이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거라고 말하며 사랑을 고백한다.
우리는 살면서 과거를 바꾸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이미 알고 있었다면, 다르게 살아갈까.
대학 입시를 치뤘을 때, 힘든 직장 생활이 이어질 때, 이성친구와 헤어졌을 때.
결과를 알고 난 후에야 우리는 과거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랬다면 어땠을까.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리는 비슷하게 살아갈 것이다. 다만, 좀더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꿀 뿐. 그것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끼는 기억들이라면 더욱.
미래의 앨바가 어린 앨바를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미래의 앨바가 어린 앨바에게 아빠의 죽음을 알려준다. 너무 힘들어 하지 말라고, 괜찮다며 예방주사를 놓아주는 것이다. 그 후에도 종종 미래의 앨바는 어린 앨바의 친구가 되어준다.
아빠가 죽은 후에, 들판에서 놀던 앨바는 과거의 아빠가 시간 여행을 와서 만날 수 있었다. 클레어는 그 소식을 듣고 단번에 뛰어와 안긴다. 소중한 시점, 중요한 곳으로 더 빨려드는 시간 여행처럼, 우리 삶도 소중하고 중요한 시점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엄마와 처음 만난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앨바에게 헨리는 이야기를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들려준다. 죽었지만 죽지 않은, 기억하고 있는 추억들로 행복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어느 화창한 날 조그마한 여자애에 불과했던 네 엄마가 빈터를 찾아 나온 거야. 거기에 한 남자가 있었지.
그 남자는 엄마에게 시간여행자라고 했지.엄마는 그 말을 믿었어.
끝없이 이어지는 도돌이표같은 영화,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지켜내는 사랑과 가족애를 그린 아름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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