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의 끝은 무엇일까. 수면 위로 드러난 아내의 외도는 어떤 결말까지 가져올 수 있을까. <언페이스풀>은 제목 그대로 '외도를 하는' 영화이다. 평범한 아내의 우연한 일탈과 욕망이 가져오는 가족의 붕괴와 이를 바로잡으려는 그릇된 노력들이 그려진다. 여주인공 코니 역을 연기한 다이안 레인과 에드워드를 연기한 리차드 기어의 섬세하고 안정적인 연기가 일품이며, 세 사람의 관계가 휘몰아치는 충격적인 결말이 섬뜩한 영화이다.(*스포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에 던져진 위험한 욕망
8살 아들을 키우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에드워드 섬너와 코너 섬너는 뉴욕 교외에 살고 있다. 주식이야기를 하는 남편과, 변기 뚜껑까지 얘기해줘야 하는 아들과의 아침은 평범하고 즐겁다. 아들의 생일 파티 준비를 위해 쇼핑을 나갔던 코니는 폴 마텔이라는 젊은 남자와 마주치고, 남자의 집에서 치료를 받는다. 선물받은 책에서 명함을 찾은 코니는 감사인사를 하기 위해 폴에게 전화를 걸게 되고, 다시 남자의 집을 찾게 된다. 평범한 일상에 찾아온 설렘을 코니는 물리치지 못하고, 그에게 빠져들게 되고, 아내의 어색한 행동과 쇼핑 흔적을 발견하곤, 그녀의 스케줄을 확인한다. 아내의 외도를 확신한 그는 폴을 찾아가고, 자신의 가정이 파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에드워드는 폭발하고 만다.
충동적이고 자유분방한 매력에 빠져드는 코니
와인을 마셔라 그대에게 영원한 삶과 청춘을 줄지니 와인과 장미 친구들에 취하는 계절
이 순간에 감사하라. 이 순간이 곧 삶이니까.
코니와 폴이 처음 만났을 때, 폴은 자신의 집 책장에서 이 문구를 읽게 한다. 폴의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여사친이라는 이름 아래 즐기는 여자가 몇 명인지 모르고, 전처가 있다는 자신의 과거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은 채, 현실만 즐기며 사는 남자.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누군가의 인생 달라진다. '영원한 삶과 청춘'이라는 달콤한 말이 주는 유혹이 코니를 사로잡는다. 장난기 많은 아들을 받아주고, 남편의 일상을 공유하던 평범한 주부에게 이 남자의 플러팅이 시작된 순간, 그녀의 마음이 요동친다.
활시위를 출발한 화살과 같이.
다시 되돌릴 수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는 충동적이지만 신비롭고, 경솔하지만 재치가 넘친다.
그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코니는 늘 하던 집안 일이 버겁고, 아이의 하교시간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한 남자에게 마음이 빼앗겨 버리고, 엄마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장면들에서는 한없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코니는 마음이 빼앗길수록, 자신의 일상도 빼앗겨버린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겪고나서야 알게 되는 인간의 무지함
처음엔 가볍게 시작하지만 일이 커지지.
결국 누군가 알아채거나 누군가 사랑에 빠지거나.
긑이 안 좋아. 항상 끝이 안 좋지.(친구 트레이시의 고백)
우연히 만난 친구는 젊은 남자와의 외도를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의견에 반박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만다. 큰 상처가 있는 듯한 친구의 모습에 코니는 당황하며 폴과의 관계를 돌이키려 하지만, 이미 시작된 마음을 주워담을 수 없어서 갈등한다. 코니는 끝까지 간다. 실수하고, 일상을 잃어버리고, 자신과 가족들을 기만하지만 끝까지 폴을 놓지 못한다.
그래서, 정말 친구의 말처럼 된 걸까. 잔인한 상황들을 맞딱뜨리고 나서야, 자신의 선택들을 후회하며 몸과 마음의 질주를 멈춘 코니의 무지함이 마음을 속상하게 한다.
코니는 바람이 심하게 부니 나가지 말라는 남편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쉽게 유지되는 것 같지만, 견고한 노력이 필요한 가족
에드워드가 폴을 찾아가며 둘은 조우한다.
폴의 집을 둘러보며, 코니가 있었을 자리들을 상상하는 에드워드의 표정이 슬프다. 감정을 누르며 천천히 질문하는 에드워드에게 폴은 담백하게 대답한다. 눈맞춤이 어색해할 뿐, 죄책감은 없어 보이는 그의 웃는다. 젊음과 자유분방함에서 오는 치기는 뻔뻔함을 동반한다는 생각이 든다.
코니가 좋아했는지를 연신 물어대는 에드워드의 관심은 오로지 코니의 마음뿐이다. 그는 코니에게 한없는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확인사살 하듯이 하나하나 질문하는 에드워드. 버겁고, 위태로운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이 동네를 좋아하던가?(에드워드)
-네, 교외보다는 덜 지루하겠죠.(폴)
아들의 교육을 위해, 안락한 가정을 위해 교외로 이사했던 에드워드는 폴의 입을 통해 들려지는 자신의 이야기에 분노한다. 신뢰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며, 가족을 위해 전심으로 노력했던 에드워드에게 코니의 외도는 심각한 신뢰의 훼손이었다. 지키고 노력했던 것이 누군가의 입으로 흡집이 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아내를 사랑하고, 늘 아내의 관심을 존중했던 남편이기에 더 괴로웠을 에드워드. 자신이 선물한 스노우볼이 폴의 집에 있자, 에드워드는 배신감과 분노로 폭주하고 만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완전한 범죄가 되어야 했던 에드워드는 혼신의 힘을 다해 증거를 감추고, 아들의 발표회에 참석한다.
꿈이 작다면 꿈꾸는 게 무슨 소용이에요.
힘차게 걷지 않는다면 걷는 게 무슨 소용이에요.(발표회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그는 아들이 꿈꾸며 살기를, 힘차게 걷기를 바라기에 더 혼신의 힘으로 가정을 지켜야 했다. 아내가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손을 잡고 웃을 때, 그는 안도했을 것이다. 그가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감추고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가족이 안고가야 할 댓가
코니는남편의 옷을 맡기다가 발견한 자신의 사진을 보고, 남편이 자신의 외도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집에서 폴에게 선물했던 스노우볼을 찾은 코니는 남편을 바라보고, 에드워드의 눈을 바라본 순간 코니는 진실을 알아버린다.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가족에게 감춰질 수 있는 것은 없다.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건너오기 전의 땅으로 갈 수 없는 가족이 할 수 있는 것은 평범한 일상을 지켜나가며 견디는 것 뿐이다. 실수해도 괜찮다며 도닥이고, 사랑한다는 걸 잊지 말라고 고백하면서.
서로의 치부를 서로의 가슴에만 묻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부의 모습에서 슬픔과 후회가 묻어난다. 행복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파티를 하면서도 더이상 기쁠 수 없는 가족은 깨어진 도자기처럼 아프다.
과거를 회상하며 '택시를 잡았더라면, 폴을 만나지 말았더라면, 쿨하게 헤어졌더라면'이라는 가정은 없다. 경찰서 앞에서 오랜시간 죄책감으로 몸부림치는 둘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영화의 처음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을 비춰준다.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 위에 짧은 영상이 인서트 되며, 평화로운 장면들은 아름답다. 지루하게까지 느껴지는 그것이 바로 행복이었던 것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된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 안타까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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