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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모가디슈 2021] 삶과 죽음 앞에 이념은 없었다

by sky_barabara 2024.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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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사람들. 그들에게 이념은 없었다. 오직 살기 위한 신념밖에는.


 

영화 <모가디슈>는 내전이 발생한 소말리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한과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영화입니다. 이념조차도 무력하게 만드는,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의 선택과 용기를 그리고 있으며,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군함도> 의 혹평 속에서 류승완 감독이 칼을 갈며 만든 영화답게, 코로나 시국인 2021년임에도 200만이 넘는 기적을 일궈낸 영화입니다. 사실적인 역사를 바탕으로, 인물들의 갈등과 고민, 결기를 담담하게 그림 영화, <모가디슈>입니다. 

 

 

살기 위해 한마음으로

 

한신성(김윤석) 대사는  UN가입을 위해 가장 많은 투표권을 가진 아프리카에 외교관으로 파견되어 정부 인사들에게 잘보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1991년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이 일어나면서 낯선 도시에서 고립되고 만다. 통신마저 끊기고, 매일 총알과 포탄 소리를 들으며, 탈출할 기회를 엿보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러던 어느 날, 북한 대사관의 일행들이 반란군들을 피해 남한 대사관의 문을 두드리고, 이들은 함께 살길을 도모하게 된다. 소말리아를 탈출할 수 있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는 그들의 머리 위로 총알이 빗발친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이들은 비행기에 몸을 싣고, 비행기에서 내린 이들은 남한과 북한, 각각의 나라에서 마중나온 인사들을 향해 걸어간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이 영화는 실제로 대한민국과 북한의 외교관들이 고립된 뒤, 함께 모가디슈를 탈출했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1980대에는 우리나라의 급성장을 도모하는 시기이면서도 UN가입 등 국제적으로 반등하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로,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91년은 우리나라 외교관들이 아프리카에서 고군분투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당시 소말리아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반정부시위가 과격화되면서 무력행사가 이어지고, 소말리아에 거주하던 외교관들이 몸을 피신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몰리게 된다. 부패와 무력행사가 공공연하던 소말리아에서 탈출하기 위해 21명의 남북한 외교관들의 화합과 갈등, 살기 위해 협력하는 모습들을 통해 이념의 무가치함을 드러낸다. 이 영화에는 억지로 눈물짜기 신파도 없고, 정치색도 없는, 오직 삶에 대해 간구하는 사람들의 모습만이 그대로 담겨 있다.

 

죽음 앞에서는 무력한 이념

 

강대진 참사관(조인성)과 태준기 참사관(구교환 )의 갈등이 이념적 갈등의 한 모양을 보여주는데, 남한이 소말리아 대통령과 접견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놓는가 하면, 대통령에게 보낼 선물을 중간에서 갈취하는 등, 초반에 앙숙의 모습이 그려진다. 살기 위해 찾아간 남한 외교사택에서도 조인성은 북한 외교관들의 전향을, 구교환은 자신들의 이념을 고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살아 남기 위해 함께 서로의 수교국을 통해 탈출하자는 계책을 세우게 된다. 

 

 

서로 연설하지 말고, 대화를 합시다. 

 

이태리 대사관에서 수교 전인 북한 사람들까지 책임질 수 없다는 말에 한신성 외교관(김윤석)은 전향한다는 말로 그들까지 품기로 하고, 이집트 대사관에서는 림용수 대사(허준호)가 남한과의 접촉까지 챙겨주는 등 서로 한마음이 되어 살길을 도모한다. 그러면서도 북한과 남한의 미묘한 긴장감을 감출 수 없다. 

 

 

구조기를 타기 위해 이동할 수 있는 자동차에 책을 붙이고 협력하면서 남북한 가족들은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되고, 비행기에서 내리며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하며 서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류승완 감독은 급박한 상황들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어떠한 신파나 정치색도 드러내지 않고, 인물들의 감정을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해피엔딩이지만 쓸쓸한 결말

이태리 대사관으로 향하던 중, 태준기 참사관(구교환)의 죽음을 목격하고 모두 함께 애도한다. 케냐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남한과 북한 사람들은 서로 챙겨주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케냐 공항에 도착한 사람들은기다리고 있던 남북한 관료들에게 각각 걸어간다. 서로 곁눈질도 하지 않은 채.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이고, 살 수 있는 방식이었다. 서로 절대 아는 척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건네는 눈빛과 악수에서 이념을 넘어서는 인간적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남북한 외교관들이 소말리아를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에도 소말리아에서는 내전이 한창이며, 어린아이들까지 총을 들고 전쟁에 임하는 모습들이 그려진다. 삶과 죽음 위에 이념이 존재할 때, 우리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해졌다.  

 

 

 

생각이 우리를 감쌀 때

 

이념과 사상은 죽음앞에서 무력했다. 생각이 많아지면 의견이 생기게 되고, 고정관념이 된 생각들은 타인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도구로 쓰인다. 생각이 고착화 될수록 다른 생각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밀어내게 되며, 다른 생각을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미워하게 된다. 생각이 커지면 사람은 멀어진다. 삶을 윤택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한 장치와 도구인 이념이 사람과 삶을 집어삼킬 때, 우리는 그것의 노예가 되고, 자유하지 못하고, 속박되고 만다. 이념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해버린 우리 역사의 아픈 부분을 목도하는 순간, 이 영화의 해피엔드에도 웃을 수 없는 심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