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re you?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식상한 말같지만 '웃음'과 '감동'이 있는! 웃음은 은근하게 감동은 눈물 쏙빠지는 영화 <아이캔스피크>입니다. 이 영화는 오랫동안 숨겨왔던, 하고 싶었던 말을 드디어 해내고야 말았던 나옥분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구청에 민원 넣는 할머니의 외로움과 정, 의리를 보여주는 영화인 것 같지만, 뒤로 갈수록 베일을 벗는 이야기들은 역대급 반전으로 꼽힐 만큼, 충격적이고 감동적입니다. 나문희 선생님의 천연덕스럽고 자연스러운 연기가 극 전체를 안정감있게 잡아주고 있습니다. 이제훈과의 케미도 훌륭했고, 다른 조연들의 맛깔나는 연기는 영화에 감칠맛을 더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멋진 유머와 담백한 서사 속에 녹여낸, 보는 내내 웃고 울게 만드는 영화로,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추천하는 <아이캔스피크>입니다. (*스포 있습니다.)
가만히 살 수는 없다
민재(이제훈)은 영진구청으로 발령받아 첫출근하는 날, 나옥분 할머니(나문희)를 만난다. 20년 동안 8천 여건의 민원을 넣어 '도깨비할매'라고 불리는 옥분에게 원칙대로 하라며 일침한다. 정순은 영어 공부를 하고 싶지만, 학원에서도 반기지 않고, 우연히 민재의 영어실력을 본 옥분은 선생님이 되어 달라며 부탁한다. 민재는 내키지 않아 거절할 구실을 만들어 냈지만, 동생이 할머니의 수선집에서 저녁먹는 모습을 본 후, 옥분의 영어선생님이 되기로 한다. 앙숙처럼 만났지만, 함께 하는 시간들이 늘어날수록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한편, 옥분이 영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이유가 미국에 있는 남동생 때문인 걸 알게 된 민재는 대신 전화를 걸게 되고, 남동생의 태도에 실망한 민재는 옥분의 영어수업을 그만두게 되고, 옥분은 민재의 비열한 행정업무에 배신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 친구 정심(손숙)의 병을 알게 된 옥분은 큰 결심을 하고, 미국으로 향한다.
맛깔나는 조연들의 향연, 웃음 유머 코드
이 영화에는 웃음을 유발하는 코드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영화 전반부에는 무방비 상태로 영화를 보다가 허를 찌르는 유머에 실소를 터트리게 된다.
공무원들이 9시에 맞춰 출근하기 위해 10분 전부터 군대처럼 몰려오는 모습과 원리원칙주의, 융통성 없는 공무원,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법의 테두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비리 등 다양한 모습이 그려진다. 나정순 할머니의 주변 인물들도 인간적이고, 정 많은 사람들로 그려지는데, 그 중에서도 진주댁 역에 염혜란 배우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입에 착착 감기는 사투리는 물론이고,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웃음과 울음을 유발하는 연기로 이 영화에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족발집 혜정 역에 이상희 배우도 억척스럽지만 정있는 인물로 옥분 할머니의 진심을 드러나게 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보다가 나중에는 눈물바다를 쏟게 되는 독특하고 인상적인 영화임이 틀림없다.
인물을 통해 보여주는 설득력
구청직원과 민원인의 관계, 영어선생님과 학생의 관계, 위안부 할머니와 조력자의 관계, 할머니와 손주의 관계 등 이 영화에는 한 인물이 가지는 다양한 모습들이 나타난다. 이런 관계의 설정들이 주인공의 소망을 잘 드러내주고, 인물들의 행동에 설득력을 더한다. 입체적이면서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과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생각난다. 평범하고 소박하게,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나의 주변 사람들.
입체적인 사람들의 관계가 변하면서 이야기는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낸다. 나옥분 할머니의 비밀이야기를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이 비난하기보다 안아주고, 따돌리기보다 존경하고 도와주는 모습은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나옥분 할머니의 연설 장면에서 할머니가 한국말로 연설을 시작하자, 의회에 앉아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어폰을 끼며 경청한다. 할머니가 영어로 말하자 이어폰을 빼고 경청한다. 할머니의 말에 귀기울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어폰을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연설이 끝난 후,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I'm sorry"라며 용서의 악수를 건네는 장면은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그녀들의 진짜 이야기
배우 나문희의 실제 모델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이다. 국제사회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여성인권운동가로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문제를 강제적 인권유린으로 공식 비난하는 내용의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했다. 다른 2명의 피해자들(김군자, 얀 루프 오헤른)과 함께 후원금 일체 받지 않은 개인 자격으로 말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미첼 반 얀센 역시 실제 인물인데, 그녀의 실제 이름이 얀 루프 오헤른이다. 그녀 역시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다.
배우 나문희의 미국 의회 증언 장면은 국내 최초로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의 실제 의회에서 촬영된 것으로 주목 받았다.
*나무위키 인용
잊고 싶은 과거지만 그 사진을 버리지 않았어.
잊으면은 내가 지는 거니께.
60년 넘게 아무한테 안 보여줬는디
이 사진을 너한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내 마음이 후련타.
우리의 소명
영화는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는 이미 지났고, 그것은 전쟁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변명하고 왜곡하는 자들이 있으니.
영화는 우리가 봐야 한다고 말한다.
옥분 할머니가 민재에게 사진을 보여주듯이, 잊고 싶은 과거지만 지금도 역사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으니.
역사에 빚진 자로 그 역사를 정확하게 보는 것만으로도, 후련함과 자유함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의 역사를 숨겼던 과거에는 가질 수 없는 후련함이었을 것이다. 옥분 할머니는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모든 회한과 설움을 다 토해내고 나서야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며 자유해졌을 것이다.
실제로 이용수 할머니는 정부의 지원금이나 시민단체의 지원금을 받지 않고 오로지 개인의 자격으로 미 의회에서 연설하였다고 한다. 잊지 않기 위해서 행했던 일의 결과는 HR121 결의안 통과였다. 이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죄해야함을 국제사회가 공식 인정한 최초의 재판으로 기록되었다. 2007년 7월 30일 의회의 만장일치로 통과된 이 결의안은 계속 기억될 것이다.
사람의 삶은 유한해서 그 때를 살고 경험했던 사람들은 사라질지라도 용기를 내어 실천한 노력들은 결실을 맺고, 그 열매가 다시 씨를 뿌리며 계속 기억될 것이다. 그것을 계속 알아가고 기억하는 것이 다음 세대들을 위한 우리의 소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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