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지옥><반도>등의 장르물을 탄생시킨 연상호 감독의 신작 <기생수 : 더 그레이>가 2024년 4월 5일 첫 공개되었습니다. 6부작으로 공개된 <기생수 : 더 그레이>는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기생수>를 원작으로 한국판 스핀오프 작품입니다. 일본에서 1988년부터 시작된 만화 원작은 2014년 <기생수 part1>, 2024년 <기생수 part2>의 TV애니메이션으로도 공개되었습니다. 선풍적인 인기로 전세계적으로 2500만부 이상의 누적 판매량을 보유하고 있는 원작 만화의 세계관은 가져오되, 인물의 배경과 기생수의 특징 등 다양한 재설정을 통해 연니버스(연상호+유니버스)의 계보를 잇는 컨텐츠가 탄생했습다.(*스포 있습니다.)
생존하기 위해 존재한다
수인(전소니)은 어린 시절의 아픔을 간직한 채, 마트점원으로 일하며 외롭게 살아간다. 마트에서 실랑이가 붙은 남자가 퇴근하는 수인을 뒤쫓고, 분노에 차서 수인을 칼로 찌른다. 그때, 하늘에서 떨어진 세포가 쓰러진 수인의 귀로 들어가고, 수인은 상처 하나 없이 병원에서 깨어난다. 김철민(권해효) 형사가 이 사건을 맡고, 수인과 인연이 있었던 철민은 수인을 걱정하며 챙긴다.
망나니파에 몸담고 있던 설강우(구교환)는 경쟁조직인 영등포파의 중간보스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고향집에서 동생은 안보이고, 누나는 이상해진 것을 눈치챈 강우는 누나의 뒤를 쫓고, 기생생물과 새진교회의 참혹한 실상을 발견한다. 그 과정에서 강우는 수인과 만나고 수인의 상태를 알게 된다.
한편, 서울 특수전담반(그레이팀)이 남일경찰서로 오고, 총지휘를 맡은 최중경 팀장(이정현)은 기생생물에 대해 브리핑한다. 기생생물 정보를 들은 철민은 칼에 맞았다는 수인에게 아무 상처가 없었던 것을 상기하며, 의구심을 갖는다. 기생생물 집합소였던 새진교회를 살펴보던 중 수인의 열쇠를 발견하고, 수인이 걱정되어 찾아가지만 수인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던 최중경 팀장은 철민을 미행하여 수인을 죽이려고 한다.
종족들과 경찰의 눈을 피해 수인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화의 후반부에 몰아치는 반전과 기생생물들의 의외의 존재감이 눈을 사로잡는 영화 <기생수 : 더 그레이>는 넷플릭스에서 방영중이다.
원작의 모티브와 독특한 설정이 만들어낸 한국판 기생수
<기생수 : 저 그레이>는 기생하며 살 수밖에 없는 생물이 사람의 몸을 숙주로 삼아 생존하려고 하는 독특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SF 영화다. 수인의 칼에 찔린 상처는 깊었지만, 기생수가 몸에 들어가서 그녀의 상처를 치료한다. 왜냐하면, 그녀의 몸이 온전해야 기생수 자신도 생존하기 때문에. 그런데 기생수는 그녀의 상처가 워낙 심해서 상처를 치료하느라 그녀의 뇌를 다 먹어버리지 못해 변종이 되고 말았다. 하루에 단 15분 정도만 나타나는 기생수는 강우를 통해 수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함께 살 길을 모색한다. 보통의 기생수 종족들은 몸을 차지하고 제어할 수 있게 되면, 숙주인 인간의 몸을 자동차처럼 생각해서 고장나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하이디는 다른 몸으로 갈아탈 수도 없는 불완전한 종족으로 자신의 일부인 수인의 몸을 지키기 위해 늘 절박하게 싸운다.
수인 : 하이디가 신중 한 건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나 때문이야. 내가 위험해질까 봐.
하필이면 운도 없게 그 많은 사람중에 죽어가던 나한테 들어오는 바람에
나를 온전히 차지하지 못했대. 자기가 살기 위해선 나부터 살려야 했으니까.
경희 : 어쩐지, 그래서 강했구나.
보통의 동족들은 (중략) 고장나면 불편하겠지만 버릴 수 있다.
하지만 하이디는 그럴 수 없었던 거다. 자신의 일부를 지켜야 하니까.
그래서 하이디는 강해야만 했고, 항상 절박하게 싸운 거다. 너를 지키기 위해서.
공존, 공생을 통한 성장
불완전한 변종 기생수 하이디의 존재를 통해 사람과 함께 공존, 공생할 수밖에 없는 설정을 만들고, 수인의 내면에 있는 상처까지도 함께 대면하며 둘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 간다. 경희는 조직 속에서 오직 생존만을 위해 맹목적인 살인을 저질러 왔다. 함께 살기 위해 더 강해진 둘의 모습은 경희가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연대였을 것이다.
원작을 보지 않고, <기생수 : 더 그레이>를 정주행한 주관적인 평으로는, 꽤나 신선하고 흥미로운 설정이며, 사건의 전개 또한 늘어지지 않고, 속도감있고 짜임새있게 그려진다. 구교환이 맡은 강우 역할을 통해 수인과 하이디의 관계는 맺어지고, 성장한다. 6부작이지만 한편의 영화 같은 느낌이었다.
오직 생존만이 전부인가
살아 숨쉬는 것만이 생존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람은 왜 생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살아가는 존재의 가치는 무엇인가.
<기생수 : 더 그레이>다소 철학적인 의문을 등장 인물들의 입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 생존'이라고 말한다. 기생생물이 단번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위협적이고 대단한 능력을 가졌지만, 사람보다 하수인 이유는 인간처럼 의지하고 공감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누군가의 몸에 기생해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 생존을 위한 기생, 기생을 위한 생존만이 그들의 이유였는데,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들을 인간을 통해 배운다.
오직 생존만이 전부인가
이 남자를 봐라.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게 덤벼들었다.
전혀 이성적인 선택이 아니지.
(경희)
인간적인 감정들을 배제하고 오직 생존이 목적인 기생수들에게 이성적이지 않은 선택은 곧 죽음이다.
그런데 자신을 향해 복수심에 불타 달려드는 강우를 보면서 경희는 의아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는 말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되새긴다.
우리가 선택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
그 중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는 서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그러기에 조직을 꾸리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경희)
기생수가 기생하기 위해 존재하는 단순한 세포가 아니라 생각하고 발전해 나가는 존재로 설정함으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찰한다. 하나의 개체로 있을 때보다 둘, 셋, 조직으로 있을 때, 가치와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인간의 가르침을 종족들은 열심히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기 위해 더 큰 조직을 선택하는 '배신'도 배웠다.
목사 권혁주는 생존하기 위해 보호하고 의지할 수 있는 '조직'을 배웠고, 강우의 누나 경희는 '배신감'을 느끼며 인간의 '공감'을 배우고, 수인의 기생생물인 '하이디'는 수인의 내면을 따라가며 다른 존재에 대한 '믿음'을 배운다. 이처럼, 생존의 가치를 넘어선 가치들을 인간은 추구하고, 확장하며, 그 안에서 살아간다.
<기생수 : 더 그레이>는 단순 크리쳐물이 아니다. 이 영화가 이유도 없이 달려드는 좀비물이나 장벽없이 침투하는 바이러스물과 차원이 다른 이유는, 사람의 뇌를 잡아먹은 기생수가 사람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기생수들은 배우고, 노력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처음에 이들은 생존을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죄책감도 없이 이루어지는 살인 행위들은 생존을 위해 다른 생물을 죽이는 동물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배신감'이나 '믿음', '상처'와 같은 경험들이 생기면서 인간의 가치들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통해 영화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와 단단하게 이어져온 생명력을 그리고 있다.
연상호 감독은 이 영화를 구상하고 만들면서 '우리 아이가 봤을 때 어떤 걸 가져가면 좋을까'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고 한다. 영화 <기생수 : 더 그레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앞으로 살아갈 다음 세대를 향한 연상호 감독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인간의 몸에 기생해 인간을 먹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기생수에게도 질문은 있었다.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 모든 존재는 우연이 없고, 존재의 이유와 가치가 있는데, 기생수도 이 원론적인 질문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발전하려 한다. 그래서 교회라는 형식을 빌려 '조직'하고, 사람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려 하고, 지배하려 한다. 조직은 사람의 모임으로 인해 형성되는 무형의 테두리이지만, '조직'은 힘을 가진다. 사람들은 형태가 없는 '조직'이라는 것에 포함되어 있음으로 의지하고, 힘을 얻고, 의미를 얻는다.
연상호 감독은 "냉전시대라 하면 거대 이데올로기가 있는데, 지금 우리는 뒤엉켜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나. 어디에 의지해야 할지 애매모호한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본다."고 자신의 시대적 생각을 밝혔다. 이런 시대에서 우리가 몸담는 조직이 추구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팬데믹 이후,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잠재된 폭력들이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우리가 추구하는 것과 같은 곳을 바라보는 '조직'은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와 목적을 발견하고 실현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개인의 가치관과 이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것은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은 결코 이길 수 없는 힘을 가진다. 그래서 연상호 감독은 "인간과 조직에 집착하게 된다"고 밝혔다.
혼자가 아니다
수인은 철민의 죽음을 목격하고, 충격과 비탄에 빠진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를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를 경찰해 신고한 수인에게 철민은 용감하다고 칭찬했었다. 늘 아버지같은 존재로 있던 사람을 상실한 수인은 고통과 외로움으로 몸부림쳤을 것이다.
그렇지만 수인은 본래 그런 아이가 아니다. 그녀가 아버지를 신고한 것도, 자기가 가진 정보를 자신을 죽이려하는 최중경 팀장에게 이야기하려는 것도, 살인병기와 같은 경희를 찾아간 것도 그녀는 이미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의지하고 믿는다는 것은 겉으로 약해보이지만, 사실은 강한 거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내보인다는 것, 위험을 무릅쓰고 지키고 싶은 사람을 위해 애쓰는 것, 믿음으로 한발자국을 내딛는 것은 무한한 용기가 없다면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인을 닮은 하이디같은 기생수가 그녀의 몸에 들어온 것은 아닐까.
수인은 하필 죽어가던 자신의 몸에 들어와 온전한 종족이 되지 못한 하이디를 불쌍해 한다. 하지만 경희는 수인에게 말해준다. 함께이기 때문에 강한 거라고.
영화 말미에 좋든 싫든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하이디의 편지에서 '수인이는 강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기생하는 기생수에서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는 의지와 응원의 존재로 거듭난 기생수의 성장이었다.
철학적인 세계관을 크리처물의 형태로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을까. 단숨에 6편까지 내달리면서, 지루하거나 답답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전소니의 힘을 뺀 담백한 연기는 극의 흐름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었고, 구교환과의 케미도 좋았다. 그녀를 돕는 김철민 형사 역의 권해효와 반전의 빌런 김인권의 인상적인 연기도 좋았다.
이정현의 연기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의 과거를 보며 충격적인 환경에 처했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어색함으로 받아들였다. 남편의 변신을 목격하고, 사냥개로 이용하는 그녀의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심경을 잘 풀어냈다. 그녀의 예민함과 완벽주의의 이유를 알고 나면, 그녀가 고통을 봉인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남편의 머리에 씌어져 있던 보호통이 벗겨진 모습을 바라보는 이정현의 표정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고통스러움을 감추고, 자신과 타인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노력을 이해하게 된다면, 영화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강우 역에 구교환은 이 영화를 통해 더 성장한 느낌이다. 유려하고 센스있는 그의 연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한 그의 화법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을 즐겁게 한다. 스릴러 장르의 무겁고 암울한 분위기를 경쾌하게 이끌어 주는 것이 음악이나 배경이 아니라 등장 인물이라는 것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대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의 등장만으로도 이 영화를 추천하는 바이다.
*연상호 감독 인터뷰 출처 : 아이즈ize(https://www.iz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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