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엄태화
장르 : 드라마, 포스트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재난 이후의 이야기)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30분
출연 : 이병헌(김영탁), 박서준(김민성), 박보영(주명화), 김금애(김선영), 문혜원(박지후), 도균(김도윤)
개봉 : 2023. 08. 09
대지진
아파트가 가득 들어선 서울 도심,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모든 건물들이 붕괴되고 도시는 폐허가 된다. 잠에서 깬 민성은 어제와 달라진 도시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한다. 그 가운데 우뚝 솟은 황궁아파트 103호에 외부 생존자들이 문을 두드리고, 민성과 명화의 집에도 새식구가 함께 생활하게 된다.
주민 회의에서 영탁이 주민대표로 뽑히고, 제한된 식량과 생필품 때문에 외부 생존자들을 몰아내기로 결정한다.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하게 막고, 그들은 새로운 규칙을 만든다.
외부와는 다르게 새로운 규칙들을 따르고, 잔치도 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듯하지만, 외부인을 몰래 숨겨둔 집들이 발각되면서 색출작업이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명화의 잘못이 드러나고, 민성은 영탁에게 무릎을 꿇는다.
함께 공존하기보다 자기 집단의 생존을 강조하던 영탁의 책임감이 이기심에서 시작된 것임을 알게 된 주민들은 분노하고, 외부 생존자들의 집단 침입으로 아파트는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황궁아파트는 안전한 보금자리가 될 수 있을까.
등장인물
'영탁'은 불이난 집에 소화기를 들고 뛰어들어가는 대범함과 희생정신 덕분에 주민대표로 뽑힌다. 집단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지도자'와 '규칙'이 있어야 하는데, 생존을 위한 거침없는 태도와 희생으로 그가 대표로 뽑힌다. 후반부로 갈수록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모습으로 변질된다.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아파트를 위하지 않는 사람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자신의 비밀이 드러나자, 폭주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부녀회장 '금애'는 주민회의를 열어 의견을 모으고, 아파트를 위해 앞장서며 확성기를 들고 주민들의 규칙을 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영탁을 주민대표로 추대하고 바깥일과 전체적인 책임을 양도하면서 자신은 책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아들이 수색대에 있어서 자신있게 '차등분배'를 외치지만, 아들이 죽어 돌아오면서 '영탁'을 향해 원망의 소리를 외친다.
'민성'은 602호에 '명화'와 함께 사는 인물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아파트를 무리해서 마련한 가장으로, 책임감이 강한 인물이다. '명화'의 말을 통해 부당하고 힘든 일을 견디기 힘든 여린 인물임이 드러나지만, 가정을 위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 명화가 외부인을 도와준 일로 인해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무릎을 꿇고 영탁에게 비는 장면은 민성의 책임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탁의 비밀이 드러나자 가장 배신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명화'는 이 영화에서 가장 선한 인물로 나오는데, 간호사라는 직업이 가진 이미지와 맞아 떨어진다. 외부인을 잘 챙겨주며, 몰래 돕기도 한다. 혜원을 통해 영탁의 비밀이 드러나자 그를 끌어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맞서는 인물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생존 규칙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의 상황, '영탁'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생존을 위해 각자의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부녀회장인 '금애'는 아파트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며 주민수칙을 알려 준다.
1. 아파트는 주민의 것, 주민만이 살 수 있다.
2. 주민은 의무를 다하되, 배급은 기여도에 따라 차등분배한다.
3.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주민의 민주적 합의에 의한 것이며 이에 따르지 않으면 아파트에서 살 수 없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산 아파트이니 이 수칙이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기여도', '민주적 합의'라는 허울좋은 이름 아래, 부당함과 비인간성이 도사리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로봇이 아니고, 민주적 구성원 각개인은 이성적이면서도 본능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기여'를 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다수결에서 소외된 소수의 의견들도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민만이 살 수 있다'는 배타적인 가치관은 잠재적인 적을 만들고, '따르지 않으면 아파트에서 살 수 없다'는 금지와 처벌은 어제의 주민이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긴장감을 조성한다.
변질과 갈등
배급식량에 불만을 가지는 박소장에게 금애는 기여도에 따라 분배하는 거라며, 자신의 아들을 내세운다. 하지만 박소장도 외부인들과 대치하던 중 유리조각이 다리에 박혀 불구가 된 인물이다.
903동에 거주하던 혜원은 가출한 청소년으로, 재난이 발생한 후 다시 아파트로 찾아온 인물인데, 아파트 주민임에도 배타적인 기존 주민들의 텃세로 힘들어 한다.
'도균'은 외부인을 몰아내자는 주민회의에서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빠지는데, 자신의 집에 많은 외부인들을 숨겨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영탁에 의해 수색된 외부인들이 쫓겨나가고, 외부인을 숨겨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죄인이 재판받듯이), '잘못했습니다'를 200번이나 외치는 모습은 가치관의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선한 행동이 죄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아파트의 존립에 균열을 일으킨다.
공존할 수 없는 곳은 더이상 안전할 수 없다.
민주적인 수칙을 정했지만, 그것이 개개인의 양심과 공존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욕심과 이기심으로 변질되고 말 것이라는 예상을 영화는 비켜가지 않는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쉴곳은 내집
현대사회에 아파트라는 생활양식이 등장하면서 아파트에 사는 것이 로망이자 특권이 되었다. 영화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개인의 삶, 미래, 목표가 되기도 하는 아파트의 위상을 잘 그려냈다는 평이다.
많은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산 민성, 내집 마련을 하기 위해 저렴하게 나온 아파트를 매수했다가 사기를 당한 영탁, 내 아파트를 잘 살게 하기 위해 나서는 금애와 외부로부터 자기집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모습까지,
아파트라는 공간은 거주하는 건물의 의미를 넘어
자신의 삶을 구해주고, 미래를 보장하며, 가정을 보존해주는 곳으로 그려진다.
영탁이 902호 실제 주인을 죽이고, 집주인 행세를 했다는 것이 밝혀지지만, 뉘우치기는 커녕 자신의 존재를 고발한 혜원을 죽이려고 한다. 자신은 돈을 주고 그 집을 샀다며, 자신이 902호 주인이라고 외친다. 돈을 영끌하여 산 집인데 사기당한 것을 알고난 뒤, 902호 진짜 집주인의 무시하는 말투에 이성을 잃고, 주인을 죽였던 것이다.
아파트는 한 개인과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괴물처럼 그려진다. 하나의 건물일 뿐이지만, 인간의 욕망과 특권이 투영된 곳으로, 누구나 원하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황궁아파트 103호'는 현실의 아파트의 이미지를 압축해 놓은 곳이다.
성경적 이미지와 바둑돌
이 영화에는 성경적인 이미지를 연상하는 부분들이 많다. 이병헌이 연기한 인물 가짜 김영탁의 실제 이름은 모세범이다. 무리를 이끄는 이미지와 지팡이를 이용하는 부분이 구약의 모세와 유사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민성과 명화가 교회 안에서 잠들고 명화 혼자 깨어나는데, 그 때 노란빛이 들어오는 창은 예수와 제자들의 모습이 그려져있는 블라인드 창이다. 그리고 나타나는 명화의 구원자 세 사람은 동방박사 세 사람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그러나 이것은 영화의 주제와 관련된 것이라기 보다는 이미지만 차용했을 뿐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구원과 사랑이라는 적극적 희생보다 인간군상의 모습을 그리는 데 치중했기 때문이다. 가장 선한 인물로 그려지는 명화도 그의 영향력이 많은 사람들에게 끼쳐지기보다는 기생의 방법으로 연명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영탁의 비밀을 알기 위해 치매 노인을 찾아가 다그치는 장면에서는 개인의 목적을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는 처절함도 보인다.
주민투표를 할 때와 모세범이 김영탁을 죽일 때 사용된 바둑돌은 '집'을 짓고 빼앗는 게임에 사용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주제와 상징적으로 연결된다. 흑과 백만이 존재하는 바둑돌 이미지를 영화에 넣어 흑백논리로 이루어지는 세상을 표현했다. 또, 주민투표를 할 때, 찬성으로 흰 돌을 사용한 것도 '진짜 악은 선한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는 것을 표현했다고 한다. (나무위키 인용)
함께 공존, 공생(결말)
외부인의 침입으로 인해, 황궁아파트의 질서는 붕괴되고, 민성과 명화는 도망친다. 그 과정에서 민성은 큰 상처를 입게 되고, 숨어들게 된 곳은 교회다. 밝은 햇살에 잠이 깬 명화가 민성을 깨우지만, 민성은 이미 죽어있고, 그곳을 탐색하러 온 세 명의 다른 주민들에 의해 발견된 명화는 그들의 보금자리로 함께 가게 된다. 그곳은 수직으로 세워진 곳(황궁아파트103호)이 아니라 수평으로 넘어진 아파트로, 아파트 내부에서부터 유영하듯 비춰주는 카메라 동선이 일품이다. 파괴된 공간을 새로운 생활양식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명화가 질문한다.
그냥 살아도 되는 거예요?
황궁아파트에서와는 달리 아무런 조건없이 주먹밥을 나눠주는 사람들에게 명화는 의구심을 느낀다. 하지만, 그곳의 주민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봐요? 살아있으면 다 사는거지."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자격을 논하지 않고, 살아있는 것을 존중하며 사는 그들의 양식을 보며
명화는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아파트에서는 왜 이렇게 하지 못했는지. 처음부터 함께 공존할 수 없었는지.
동화같은 이야기는 없다
명화가 사는 아파트 사람들이 '사람 죽이고 먹는 사람들이냐'고 묻는 말에, 명화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집단이 있는가 하면, 저런 집단도 있듯이, 명화가 속한 집단은 그냥 그랬던 것이다.
감독은 다양한 개인의 이익과 욕심,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는 행동과 변질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무너진 곳에서도, 모든 것이 존재하는 곳에서도 인간이 가진 가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삶의 모양이 달라지는 것이다.
더 발전하고, 더 풍족해지면 사라질 것 같았던 문제들은 여전히 있고, 더 많은 다양한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모든 문제와 해결에는 양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집단의 양식과 가치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왜곡되고 변질되는 모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건강한 개인의 가치관과 기준이 없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감독의 의도와 배우들의 열연
무겁고 우울한 주제를 표현하고 있어 관객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지만(재난 영화로 생각하고 관람한 관객들이 많았다고), 2023년 대종상영화제 최우수 작품상과 청룡영화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영화의 진가를 인정받았다.
웹툰 <유쾌한 왕따>의 2부 '유쾌한 이웃'을 각색한 이 작품은 엄태화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엄태화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연출부 출신으로 <쓰리 몬스터>와 <친절한 금자씨>를 함께했다. 그래서인지 박찬욱 감독의 미장센과 닮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수직으로 혼자 살아남은 아파트와 무너진 백화점, 대형 마트, 말라버린 한강, 옆으로 뉘어진 아파트 등의 표현이 훌륭하다는 평이다. 여담으로, 엄태화 감독은 이 영화에 조연으로 등장한 엄태구의 형이다.
이 영화에는 연기 구멍이 없다는 칭찬이 줄을 잇는데, 이병헌의 연기는 물론,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의 연기도 손색이 없다. 이상적인 선인도, 비정상적인 빌런도 없고, 현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들의 묘사가 이야기에 힘을 실어준다. 극단적이고 잔인할 수 있는 장면들에서도 잔인함보다는 삶에 더 집중하며 절제된 표현들이 인상적인 영화이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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