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인의 삶>은 상부의 지시대로만 살아온 동독의 비밀경찰 비즐러(울리히 뮤흐)가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 크리스타를 감시하게 되면서 변화되는 삶의 태도를 그린 감동적인 이야기다.
이 영화의 배경은 독일이 통일되기 약 5년 전인 1986년 독일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었는데,
독일은 사회주의 체제를, 서독은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당시 독일에는 10만 명의 비밀경찰과 20만 명이 넘는 스파이가 있었다고 한다. 슈타지(비밀경찰)을 이용하여 국민을 철저하게 감시하는 억압 체제가 얼마나 부조리하고 부자유한지를 꼬집고 있는 영화이다. 또한, 사상적 억압으로 인한 예술에 대한 갈망과 진실되고 순수한 삶이 바꾸는 사람의 마음,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부조리한 것임을 표현하고 있다.
비밀경찰 비즐러, 그리고 예술인 드라이만과 크리스타
-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동독에서 비밀경찰로 일하는 비즐러는 냉철하게 상대의 심리를 꿰뚫는 사람이다. 상관으로부터 동독의 유명한 극작가 드라이만을 감시하라는 임무를 받고, 드라이만의 다락에 감청장비를 설치한다.
사상성 때문에 드라이만을 감시하는 줄 알았던 비즐러는, 도청 중에 이 임무가 맡겨진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 문화부 장관인 브루노 헴프가 드라이만의 애인이었던 크라스타를 탐내고 있었기 때문에 드라이만을 제거하기 위한 도청이라는 것을. 비즐러는 이들의 생활을 엿보며, 두 사람이 깊이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되고, 아울러 장관의 성적 착취도 눈치챈다. 크리스타는 장관을 거부하고 싶지만, 자신의 배우 경력을 위해 드라이만에게 이 사실을 숨긴다.
비즐러는 점점 이들의 삶에 깊숙이 빠져들고, 드라이만의 친구(동독 정부의 주요 인물로 지목되어 이후 자살함)가 준 "선한 사람을 위한 소나타"를 드라이만이 연주할 때, 비즐러는 깊은 감동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친구의 죽음 이후, 드라이만은 동독의 자살률을 폭로하기 위해 서독의 타자기를 쓰고 이를 문간에 숨긴다.(모든 동독의 타자기는 감시되고 있었다.)
비즐러의 변화들, 터닝 포인트
이들의 삶에 동화된 비즐러는 이들을 체포할 수 있지만 오히려 감춰준다. 그후, 비즐러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인간적인 성격으로 변화한다. 서독 잡지의 폭로에 격노한 동독 정부는 슈타지를 이용해 드라이만의 아파트를 수색하지만 타자기를 찾는 데 실패한다. (이미 비즐러가 타자기를 감추었고, 이 사실을 동독정부에 알린 크리스타는 죄책감으로 자살하고 만다)
이를 눈치 챈 그루비츠(비즐러의 상관)는 비즐러를 강등시키고, 비즐러는 한직에서 편지 검열하는 업무를 맡는다. 그로부터 5년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2년뒤 통일이 이루어진다. 드라이만은 우연히 만난 헴프(국방부 장관)에게 자신을 감시한 이야기를 묻게 되고, 집에 숨겨진 감청장치를 발견한다. 그리고 타자기가 들키지 않은 것에 의문을 품고, 그의 감시요원( HGW/XX7)에 대한 정보까지 알게 된다.
그후, 드라이만은 "선한 사람을 위한 소나타"라는 소설을쓰고, 비슬러는 서점에서 이 책을 구매한다.
'이 책을 'HGW/XX7'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를 발견한다.
선한 사람을 위한 소나타
이 영화에서 비즐러는 냉철하고 냉혹한 경찰로 등장하지만,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사랑을 진짜라고 확신한 순간, 외로움을 느끼고 매춘부를 부른다. 깔끔하고 틈이 없어 보이는 그의 내면에 작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드라이만이 "선한 사람을 위한 소나타"라는 친구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때 절정에 이르는데, 드라이만의 감정에 전적으로 이입한 것처럼 온몸을 감싸고 아이같은 얼굴을 하곤 눈물을 흘린다. 냉혹한 비즐러는 더이상 없었다.
드라이만을 감시하는 것이 문화부 장관의 치정과 관계된 부조리한 것임을 알게 된 순간부터 비즐러의 균열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사명처럼 완수해왔던 일이 가치없는 것처럼 느껴졌을 때, 사람은 인생에 터닝포인트를 맞게 된다. 비즐러는 자신의 무미건조한 삶을 돌아보며, 사랑과 자유에 대해 고찰해나가기 시작한다.
"당신의 관객을 위해 무대를 지켜주세요."
비즐러는 이제 감시하는 차원을 넘어, 그들의 삶을 동조하고 응원하게 된다. 무대에 있는 배우를 웅원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관객처럼 크리스타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공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는 듯이 단호하게.
크리스타의 자살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드라이만의 타자기를 위험을 무릅쓰며 빼돌린다.
이런 비즐러의 행동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데,
그 전까지는 관찰자의 시점이었던 비즐러가 적극적인 개입자가 되어 상황에 개입하게 되는 변화들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서서히 변화하는 인물인 비즐러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비즐러의 억압과 복종이 비즐러의 내면이 아닌 사회체제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된다.
예술성의 목적과 가치
모든 예술은 자기 마음의 표현이다. 모든 것이 감시되고 통제되는 사회에서 예술은 가장 금기시해야 할 영역이었을 것이다. 억압은 사회의 규칙과 가치를 통해 강화되고, 예술은 마음의 경계를 풀고 자유해질수록 발전한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예술을 억압하고 감시하는 이유일 것이다. 개인의 욕구는 감춰져야 하고 공감은 금기시되는.비밀경찰인 비즐러에게 감청을 통해 흘러오는 사랑과 자유의 속삭임은 무척이나 달콤했을 것이다. 자유와 예술에 대한 갈망은 몸담고 있는 조직과 사회, 국가에 반하는 것이었기에, 비즐러는 그런 국가에서 표시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낮은 계급을자처했다.
"이 책은 나를 위한 겁니다"
비즐러와 드라이만은 서로 만난 적이 없지만, 드라이만이 쓴 책을 통해 드라이만은 비즐러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비즐러의 도움을 알게 된 드라이만의 고마움은 예술로 표현할 만큼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이었을 것이다. 비즐러 또한 드라이만의 고마움에 감동하고 감당할 만큼 자유하고 행복한 사람이 된 것이다. 서로 마주보지 못해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감'있는 삶은 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자유하고 사랑하는 삶이 주는 인생의 풍성함과 억압된 사회에서의 개인의 폐쇄성이 삶의 질을 얼마나 지배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의 마지막에 형언할 수 없는 자유함으로 감동하게 된다. 박평식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참 아름다운 감염'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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