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약혼녀를 하루아침에 잃은 남자의 이야기.
<화차>는 이 남자를 따라가며 약혼녀의 과거와 현재를 추적한다.
<화차>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비오는 휴게소 장면이다.
극적인 반전의 시작임과 동시에 사건이 일어나는 시점.
이때부터 심장이 두근두근~
<낮은 목소리>와 <밀애>의 메가폰을 잡았던 변영주 감독은
이전 작품들처럼 여성의 삶에 집중한다.
분명 카메라는 여성(김민희 역)은 없고 남자(이선균 역)의 뒷모습만 시종일관 쫓아가는데
감독은 절박한 화자의 심경을 세밀하게 표현하면서 여성의 삶에 더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지옥으로 가는 마차를 탄 사람들
'화차'는 지옥불로 가는 수레마차라는 뜻이다.
이 영화의 핵심인물인 '차경선'은 진흙에 빠진 마차가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달리는 것과 같다.
그런데 달리면 달릴수록 진흙에서 벗어나기는커녕 더 빠지는 모양새다.
이 영화의 화자인 문호 역시 경선의 과거를 찾기 시작하면서 지옥불로 열심히 가는 마차를 탔다.
일본 원작에는 문호의 역할이 없는데
변영주 감독은 3인칭의 시점이 아니라 1인칭의 시점으로
'차경선'의 인생을 보여주려 고 의도한 것 같다.
문호의 역할이 없었다면 '차경선'은 아마도 우리의 삶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문호의 감정을 따라가면
경선에게 화나거나 답답하거나 안타까운 감정들을 느끼게 되는데,
문호라는 인물의 뒤에 카메라를 설치한 감독의 의도가 돋보인다.
사라진 약혼녀 그리고 진실
어느 날,
약혼녀가 한 순간에 사라진다면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문호와 결혼을 약속한 선영은 문호의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이다.
문호가 잠시 커피를 사러간 사이, 사라진 약혼녀 선영.
말한마디 쪽지 한 장 남기지 않고 사라진 선영을 찾기 위해
문호는 그녀의 집과 회사를 찾아가기 시작하고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하고 만다.
선영의 과거를 하나하나 쫓아가'나비'가 되고 싶은 여자와
'동물'을 사랑하는 남자 한 여자의 인생을 역추적한다.
'선영'은 원래 '경선'이고 '선영'의 인생을 훔친 여자이다.
'경선'의 인생은 아버지의 사채에 의해 구렁텅이에 빠졌는데
그 구렁텅이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더 깊숙한 곳에 빠진다.
늪에 빠졌을 때 벗어나기 위해 발을 떼는 순간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나비와 수의사의 의미
'경선'이 '선영'이 되기 위해 행했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나비'이다.
여자는 나비를 키우는가 하면 나비 구경을 가자며 친구에게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피에 젖은 나비가 날지 못하고 파닥거리는 장면은 핏빛 인생을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를 상징한다.
나비는 날고자 하지만 피에 날개가 젖어 날지 못한다.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피의 '늪'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는 것이다.
반면,
문호는 동물을 고치고 보호하는 수의사이다.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동물을 보호하고,
생명을 소중하게 다루며 안정적이고 편안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그의 역할은
그의 성격과 맞닿아 있다.
그는 여자에게 먼저 '결혼하자'고 말하며 '안정'을 추구하려 한다.
날개를 달고 비상하려는 여자(나비)와 땅에 발을 디디고 안정을 추구하려는 남자(동물)의 어긋남은
처음부터 예견된 것이 아니었을까.
문호를 바라보며 선영은 분명 안정적인 삶을 꿈꾸었을 것이다.
나도 땅에 발을 디디며 정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러나 '나비'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여기저기 꽃가루를 옮기며 날아다녀야 하는
운명이다.
죄의 댓가와 해방
여자의 인생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충격적인 사실들에
문호는 분노하고, 실망하고, 두려워한다.
그리고 계속 추적해도 될까, 하는 망설임 속에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행보는 비장하다 못해 사명감까지 느껴진다.
약혼녀에 대한 답답함과 실망, 그리고 안타까움과 허탈함으로 이어지는 감정선은
용산역 재회하는 장면에서 폭발한다.
이선균 배우는 이 장면에서도
감정을 완전히 폭발시키지 않는다.
그녀의 인생을 자신이 구원할 수 없다는
무력함까지 느껴지는 그의 연기가 일품이다.
문호의 사랑은 진짜였기 때문에 마지막까지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녀의 모든 것들이 가짜라고 할지라도
자신을 향한 마음만큼은 진짜일 거라는 한가닥 희망을 의지해 끝까지 그녀를 추적하는 문호.
결국 그녀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잘 지냈어?'였다.
그녀가 사라진 후,
그의 모든 일상이 무너지고 다시없을 고통 속에 있는 문호는
결코 잘 지낼 수 없었을 그녀의 양심을 건드리는 말을 건넨다.
그녀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잡히지 말라며 놓아주는 문호를 뒤로 하고,
그녀는 마지막 종착지에 도착한다.
현실이 더 비극적이었던 삶을 그린 영화
그녀는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감하지만
그 순간, 문호가 자장가를 불러주던 그 때를 떠올린다.
죽음의 순간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면
그녀의 삶은 얼마나 고단하고 힘겨웠단 말인가.
지상에서의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없었던 여자는 비상하지 못하고
죽음의 순간, 하늘로 날아오르고 만다.
그 끝은 추락이었지만 가장 편안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다른 사람으로 살고서라도 잊고 싶었던 자신의 애쓴 인생을 마감한다.
문호의 마지막 절규와 사랑마저도
사치처럼 느껴지는, 그녀의 눈물이
가슴을 저리는 엔딩이었다.
'영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세우는 말 <감정은 사라져도 결과는 남는다_이해인> (0) | 2024.03.20 |
---|---|
영화 러브,로지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0) | 2024.03.20 |
서울의 봄 리뷰 그들에게 봄날은 없었다 (0) | 2024.03.19 |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드라마 <스토브리그> (5) | 2024.03.18 |
영화 <DP> 리뷰 (0) | 2024.03.17 |